▒ ▒ ▒ 백승호선생님의 언어논술교실 ▒ ▒ ▒
유레카
꿈을 담는 틀
논구술 틀
논술아카데미
위즈
             

  View Articles

Name  
   백승호 
Subject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1) 유종호 연세대특임교수




  우리들의 아득한 기억 속에서 문학 향수는 대체로 잊혀지지 않는 감동과 연결되어 있다. 또는 뒷날 좀처럼 다시 만나지지 않는 흥미진진함과 연관되어 있다. 기억하는 한 최초로 접해 본 그림책 혹은 최초로 읽어본 동화책은 우리의 유년시절에 켜 있던 꺼지지 않는 마법의 등불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어린 시절을 황금 시절인 양 뒤돌아 본다. 결코 축복 받았다 할 수 없는 유년을 가졌던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름다워 보이는 법이다. 우리들의 유년이 돌이킬 길 없게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시간은 지난 날의 권태와 공포와 고통을 잊게 하고 짤막했던 즐거움과 행복이 순간을 전경화(前景化) 시켜준다. 그러나 그것뿐만이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이 새로운 경이와 불안스러운 기대로 다가오던 세계 상봉의 은은한 기억이 우리의 유년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최초로 접하였던 그림책 그리고 최초로 읽은 동화책도 경이로운 세계 상봉의 하나였으며 그것은 또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가슴 설레는 약속이었다. 지금처럼 놀이나 노리개가 많지 못하였던 세월을 산 한 세대 앞 사람들에게 그것은 가장 중요한 세계 상봉의 계기였을 것이다. 책의 세계는 유년의 우리들 가슴을 한결 조마조마하게 하고 숨결을 가쁘게 했으며 육체적이 감동과 정신의 집중을 선사해 주었다. 그러한 책 세계는 현실보다도 더욱 현실적이기까지 하였다. 교과서라는 반드시 즐거운 것만이 아닌 또 하나의 책 세계가 우리들 앞에 열려 있었다. 교과서의 세계가 그림책과 동화의 책이라는 마법의 세계를 얼마쯤 퇴색하게 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부와 의무로부터 멀리 떨어진 마법의 세계를 더욱 매력 있게 한 것도 사실이다.

  문학독서의 이상적인 상태는 책이라는 마법 세계에 빨려 들어갔던 유년 체험을 재생하는 일이요 복원하는 일이다. 일상적인 자아를 잊어버리게 하는 매혹의 집중, 주인공의 모험과 낙담과 행복에 대한 전신적인 공명, 그리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가슴 설레는 동경과 호기심을 다시 회복하는 일이다. 놀이에 열중해 있은 어린이의 일편단심을 성년 전후한 청년들이 재생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독서의 이상적 상태로서 전범(典範)의 상기가 되어 주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탐닉적 몰아적 독서만으로 독서 행위가 완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공자의 말은 문학 독서의 경우에도 고스란히 해당된다. 흉내내기보다는 훔치는 시인이 윗길이라고 말한 엘리어트는 시에 관해서 즐기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으며 이해하지 않고는 즐길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즐기는 것이 곧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참으로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비판할 수 있다. 비판적인 독서는 몰입적이며 탐닉적인 독서를 실천한사람만이 수행할 수 있는 독서 기술일 것이다. 학문에 왕도가 없듯이 독서에도 외줄기 왕도는 없다. 그것은 각자 가 제가끔의 방식으로 발견하고 창조해 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왕도에 이르는 조언이나 시사는 가능할 것이다.


즐길 수 있는 책부터


  스스로 고전이란 이름에 값하는 책을 써서 독서의 대가들이 한결같이 강조하는 것은 많이 읽고 꼼꼼히 읽으라는 것이다. 다독과 정독에 으레껏 곁들이는 충고는 또 정평 있는 고전을 읽으라는 것이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경험과 지혜로 차 있는 금언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지만 이러한 원론은 대개의 일반론이 그렇듯이 지혜로운 독서를 지향하면서 출발점에 서 있는 젊은이에게 실천적인 지표가 되어주지 못한다는 흠이 있다. 구체적인 세목이 추가되어야 비로소 의미 있는 원론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것이다.

  고전의 중요성은 말하는 편이 새삼스럽게 들린다. 그러나 문학 고전을 읽는다고 대뜸 동양 쪽의 <시경>이나 서양 쪽의 호메로스로 들어가는 것은 현명한 일은 아니다. 어차피 번역을 통해서 읽을 터인데 번역된 시는 시 본래의 모습이 훼손된 채 뜻만을 전할 뿐이다. 따라서 그것을 즐기기는 어려울 것이고, 왜 좋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회의감이나 자기 감수성에 대한 공연한 열등감을 안게 되기가 십상이다. 또 수많은 군인과 신들이 등장하고 생소한 고유명사가 빈번히 나오는 <신곡>은 서양 쪽 고전 목록의 윗켠에 으레히 씌어 있는 작품이지만 우리 쪽에서 과연 몇 사람이나 읽었는지는 의문이다. 헤르만 헤세 같은 광범위한 독서의 대가도 <신곡>이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인류의 위대한 세기의 책이라 할 수 있는 몇 권의 책 가운데 하나라고 하면서도 이탈리아파 학자를 빼놓고는 소수의 사람만이 진지하게 읽고 있다고 덧붙이고 있는 실정이다. 옛 고전은 시간의 풍화작용과 역사의 시련을 이겨 낸 만큼 강렬한 보편적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독자들과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너무나 상거해 있고 또 역대의 소수 문화적 선량들에 의해서 계승되어 온 만큼 소홀치 않게 어려운 국면이 있다. 따라서 일정한 문학 경험 없이는 쉽게 접근하여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번역이 드문 풍토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별다른 문학 경험 없이도 가령 소포클레스의 <오이푸스왕>을 읽고 깊은 충격과 딱부러지게 정의할 수 없는 외포감을 경험하는 것은 가능하다. 다루어진 소재 자체가 존재의 깊이에서 독자의 정신을 뒤흔들며 압도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고전비극 중의 불후의 걸작이 지닌 충격의 힘은 그만큼 막강하다. 그러나 그 세세한 결과 과부족 없는 구성과 인간의 이성적 이해를 초월하는 어떤 불가사의에 대한 전체적 파악은 소홀치 않은 문학 경험을 전제하고 있으며 반복적인 재독과 정독을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문학 독서의 첫걸음은 각자의 수준에 알맞는 정평 있는 작품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수준에 알맞다는 것은 진정으로 즐길 수 있어서 책읽기가 몰아적 집중을 뜻하는 그러한 책을 말한다. 책이 너무 쉬우면 이러한 몰아적 집중이나 향수가 불가능하다. 얼마 쯤의 지적인 도전 없이 우리의 흥미는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어렵 거나 수준에 걸맞지 않으면 이내 염증이 생기고 그 다음엔 재미없는 교과서 읽기처럼 고역으로 변하기 말 것이다. 따라서 자기 감수성에 정직하고 충실하게 마음놓고 즐길 수 있는 작가의 작품을 골라 잡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은 무리를 따르고 시속을 따른다. 소집단 속에서 가령 하품이나 헛기침과 불안과 공포와 증오는 급속하게 전염한다. 함께 사는 성년의 여성 들 사이에서는 생리의 시기조차 전염하여 자연스러운 일치가 야기된다. 주위의 친구나 동년 배들이 모두 '고전'의 가치를 칭송하며 감동을 토로할 때 그것을 물리치거나 못본 체 하고 자기의 감수성 수준에 충실하련다는 것은 진정성의 고독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사람은 지적 호기심이나 내면적 충동만으로 책을 읽지 않는다. 책을 읽는 것은 세계를 읽는 것이며 책의 이해는 세계 이해이기도 하다. 세계 이해의 충동 속에는 우리가 발을 디디고 서 있는 세계 속에서의 설 자리와 갈 길 모색의 욕구가 내재해 있다. 특히 젊은 날의 독서는 삶의 모색과 겹쳐 있으며 그러한 한에서 세계 속에서 더불어 살고 있는 타자에 대해서 완전히 냉담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타자의 존재와 암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것은 책읽기라는 극히 개인적인 행위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지만 타자의 암시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자기 수준에 맞지 않는 책과 씨름하면서 자기 부과적 중노동을 감수한다는 것은 갈 데 없는 자기기만이며 공허한 내면성의 무력한 고백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기만의 지속적인 실천과 축적은 속물주의를 공고하게 내면화시켜 주기는 하지만 책읽기의 즐거움이란 행복 세목의 아까운 포기를 빚고 말 것이다. 어느 정도의 지적 허영과 자기 기만은 젊은이의 것이고 거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삶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자기 기만의 유혹에 대한 자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것을 극복하고 그 정도를 낮추는 데 필수적이다. 지적 유행에 대해서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군중 있는 곳에 허위가 있다는 것은 철인 키에르케고르의 통찰의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 문학부터


  문학은 언어예술이다. 말에 대한 민감성은 시인 작가에게 요구되는 일차적인 자질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역량 있는 문학 독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 능력의 하나이기도 하다. 말에 대한 민감성은 당연히 제1언어 혹은 모국어 속에서 길러지고 또 발휘된다. 학습과 훈련에 의해서 외국어 속에서도 말에 대한 남다른 민감성을 발휘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제1언어 속에서 발휘되는 언어 재능이 다시 외국어 속으로 이동해서 능력을 발휘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제1언어가 되어 어디까지나 본거지인 것이다. 몇 개 언어가 동시에 제1언어가 되어 있는 희유한 개인이 있기는 하다. 유럽 근대어 거의 통달해 있는 가령 조지 슈타이너는 영, 독, 불 3개 국어에 정통하여 그것이 모두 제1언어로 기능하고 있다. 거꾸로 말하면 제1언어가 따로 없는 것이다. 3개 국어로 속셈을 하는 시험에서도 정확성이나 속도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꿈속에서도 3개 언어가 똑같은 밀도로 나타난다. 유일한 차이가 있다면 꿈 속에 나오는 관용구가 낮에 사용하였던 언어로 되어 있다는 정도다. 그의 제1언어를 가려내 기 위해 최면술 실험을 해보았지만 가려지지가 않았다. 최면술사가 구사하는 언어로 그가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이 수십 년을 바쳐도 이룰까 말까 하는 수 개 언어의 동시 통달이란 그의 언어적 행운은 복잡한 유년과 언어 환경의 소산이었다. 프랑스 파리에 서 출생한 그는 그곳과 뉴욕에서 성장하였고 출생지가 복잡한 동유럽계 유태인인 부모는 집 안에서 독일어를 사용하였던 것이다. 언어에 대한 통찰과 비교문학은 그의 운명이었다.

  이러한 예외적인 개인을 제외하고서 보통 독자들의 경우 제1언어를 통해 문학의 마법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우리말로 된 문학작품부터 출발하는 것이 순서요 철칙이다. 또 시대적으로 상거해 있는 지난날의 작품보다도 우리들의 삶이 투영되어 있고 우리들이 안고 있는 문제적인 국면과 시대의 고민이 그대로 다루어진 우리의 근대문학이 전범적이라는 것도 또 유례 없이 빼어난 성취를 보여주어 있대서도 아니다. 언어예술인 문학에서는 당연히 모국어로 된 작품에서 언어예술성을 감득하고 터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점 문학의 정수이며 언어예술성을 풍요하고 깊이 있게 보여주는 시와 친숙해지는 것이 필요하다. 한 나라의 시에는 그 나라 언어의 특성과 이모저모가 가장 잘 드러나 있는 법이 다. 대체로 문명이란 것은 투박하고 조야한 것으로부터 섬세하고 세련된 것으로 나가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으로는 폭력에서 설득으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단순화해서 요약할 수 있지 만 문화적으로는 모든 가치의 척도가 점차 세밀하게 세분화되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농경사회에 있어서 하루의 시각은 새벽, 아침, 점심 때, 저녁, 밤으로 구분해서 큰 불편이나 지장이 없다. 근대 사회에서 그것은 분과 초로까지 세분화되지 않을 수가 없다. 미묘한 차이가 커다란 차이로 감득되고 파악되는 그만큼 문화는 진화된 상태에 있는 것이라 말하는 것도 가능하다. 가령 포유류 동물 세계에서는 성폭행이란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그저 성행위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똑같은 행위가 인간 세계에서는 성폭행에서 사랑에 이르는 천차만별의 미묘한 차이로 기술될 수 있는 것이다. 헬레니즘은 인간을 언어동물로 정의하였지만 언어야 말로 인간됨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말이 곧 사람인 것이다. 말의 이모저모와 특징이 종횡 무진으로 활용되어 있는 시는 곧 사람됨의 정수를 경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생각하고 꿈꾼 모든 것,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전부가 거기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의 적정한 연구 대상은 인간이라고 시인과 철인은 말했지만 시야말로 인간의 적정한 연구 대상이다. 동서의 인문주의와 지적 전통이 시를 숭상하고 교육한 것은 단순 히 즐거움과 가르침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극시와 서사시의 전통으로부터 동떨어져 있는 우리 근대문학에서 시는 서정시를 가리키는 것이 보통이다. 서정시는 본래 짤막한 기악곡에 붙인 노랫말이 기원이다. 따라서 노래에 가장 가까운 문학 형식이다. 서구 쪽에서 서정시가 문학의 중요 장르로 부상한 것은 낭만주의 시대에 와서이다. 서정시는 대체로 짧기 때문에 언어의 경제적 처리가 특별히 요구된다. 최소한의 언어 단위를 사용해서 최대한의 효과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두루 시에 해당 되는 것이기는 하나 장시의 경우는 성질상 그런 것만도 아니다. 서정시는 압축, 생략, 비약, 암시 등을 동원하여 소재의 경제적 처리를 도모하기 때문에 특유의 밀도와 함께 독자로 하여금 의미의 이모저모를 검토하게 하는 모호성 혹은 다의성(多義性)을 띠우게 된다. 또 말뜻뿐만이 아니고 말소리 자체에도 독자의 주의를 당기면서 운율과 음율성을 지향한다. 그러므로 시에 친숙하여 뜻과 소리가 어울리는 말의 음악을 향수하는 것은 산문 문체를 음미하고 향유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서사문학의 일차적인 관심이 얘기임은 누구나 알고 있는 바대로다. 얘기의 중심부에는 대개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 혹은 개인 내부의 상충되는 욕구의 갈등 등이 이를테면 얘기의 발단이며 그것이 어떻게 충돌하고 해결되느냐 하는 것을 얘기는 들려 주는 것이다. 서사문학의 일차적 관심이 얘기에 있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서사시는 얘기를 갖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운문으로 된 얘기이다. 근대의 대표적인 서사문학 이자 어느 사이에 문학의 대명사처럼 되어 버린 소설에서도 얘기와 줄거리는 중요 요소이다. 그러나 등장인물과 인물의 행동과 거기서 빚어지는 얘기와 묘사에 현실감을 부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문체이다. 문체는 결코 수사적 장식이나 효과를 내기 위한 덧붙임이 아니다. 그것은 작가가 세계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이며 삶에 대한 작가의 태도이자 실감이다. 단순히 줄거리나 사건 전개와 귀결에 주의를 집중한다는 것은 서투르고 피상적인 소설 독법이다. 소재 처리의 방식, 묘사와 대화, 등장인물의 성격 묘사, 중요한 것은 빼놓지 않으며 중요하지 않은 것은 들여놓지 않는다는 세목 선택과 플롯, 그리고 문체의 세심한 음미를 통해 서 소설의 이해는 원만해진다. 얘기꾼의 경우 입심이 설득력과 재미의 원천이 되어 있듯이 소설의 재미와 설득력은 사실 문체에서 온다. 자기의 문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작가는 온전 한 작가가 아니다. 문체에 대한 안목은 사실상 시에 대한 안목과 같다. 필자의 관찰이 크게 틀리지 않는다면 시에 대한 적정한 안목을 가진 작가는 대개 독자적인 문체의 소유자이다. 이에 대해서 문체를 갖지 못한사람들은 대체로 시에 대한 안목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우리의 근대소설이나 단편 가운데서 기억할 만한 것들이 그 문체와 문장력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강조해 두어도 좋다. 가령 교과서에 흔히 나오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김유정의 <봄·봄>, 이상의 <날개> 같은 30년대 단편에서 문체를 빼어 버린다면 무엇이 남을 것인가? 서양 근대의 예술소설에 이르면 문체의 중요성은 더 두드러진다. 요컨대 문학의 언어예술성을 시와 문체를 통해서 실감하고 체득하고 흡수하는 것은 제1언어 문학을 접하고 그것과 친숙해짐으로써 가능하며 온전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근대의 우리 문학작품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중요하고 자연스럽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번역된 외국시나 소설에서 출발함으로써 미로로 접어들고 문학의 예술성에 눈과 귀가 멀어지는 것은 흔히 목도되는 정경이다. 나의 문학 경험과 학교 경험은 그것이 거의 구제할 길 없는 참담한 것임을 실감시켜 주는 사례로 충만되어 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8
  독서지도법

백승호
2006/08/19 4511
17
  ‘독서형 인간’ 10계명

백승호
2005/02/03 4787
16
  NIE 제04강 신문과 NIE의 관계

백승호
2004/12/07 9074
15
  NIE 제03강 국내외의 NIE 교육

백승호
2004/12/07 5410
14
  NIE 제02강 미디어 교육과 NIE

백승호
2004/12/07 4776
13
  NIE 제1강 NIE의 개념

백승호
2004/12/07 6649
12
  무엇을 위해 독서토론 할까요?

백승호
2004/12/07 4731
11
  논술은 아는힘, 생각하는 힘, 표현하는 힘의 총합니다.

백승호
2004/12/01 4764
10
  독서활동 입시반영의 전제

백승호
2004/11/08 4640
9
  창의력 계발법

백승호
2004/11/08 5357
8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3) 유종호 연세대특임교수 

백승호
2004/11/06 6286
7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2) 유종호 연세대특임교수

백승호
2004/11/06 4951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1) 유종호 연세대특임교수

백승호
2004/11/06 5058
5
  독서에 관한 명언 100가지

백승호
2004/11/06 5429
4
  독서지도와 독서교육

백승호
2004/11/06 5551
3
  독서의 원리

백승호
2004/11/06 4580
2
  2. 학교 독서 교육 계획서

백승호
2004/11/05 5566
1
  1. 독서교육의 필요성

백승호
2004/11/05 5078
1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 skin by neon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