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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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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컵과 애국심

“일류 정치인은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가 없는가?” 미국의 진보적인 정치인 아들라이 스티븐슨이 대통령 선거에서 아이젠하워에게 두 번이나 패배하자 그의 패배를 아쉬워 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돌던 탄식이었다. 그는 1952년 본격적인 선거운동을 시작하기 직전 미국 재향군인협회 총회에 나가 애국심에 관한 명연설을 했다.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미국인의 양식을 호소한 이 연설은 “단명한 감정적 흥분의 폭발이 아니라 차분하고 꾸준한 일생의 헌신으로서의 애국심”을 강조했다.


스티븐슨이 50여 년 전에 가졌던 애국심에 대한 생각은 50년 뒤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월드컵이 불러 온 뜨거운 애국적 열기 속에서 축구해설자 신문선 씨가 네티즌에 의해 매국노로 매도당한 끝에 중도하차한 불상사가 일어났다. 한국-스위스 전에서 터진 스위스 선수의 두 번째 골이 오프사이드냐, 아니냐를 두고 시비가 붙었을 때, 오프사이드가 아니라고 해설한 것이 그가 매도당한 이유였다.


해설자 신문선씨의 중도하차


신 씨는 두 번째 골이 터진 직후 슬로비디오를 보면서 오프사이드가 아니라며 주심의 판정을 인정하는 해설을 했었다. 부심이 오프사이드 깃발을 들었지만, 주심은 부심의 오프사이드 판단을 정정할 최종 권한을 갖고 있다고 해설했던 그는 훗날 한 스포츠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주심의 판정은 한국 국민 정서에 맞지는 않았다. 해설자는 정확한 해설로 시청자의 이해를 돕는 사람이다. 그 과정에서 지나친 애국심 때문에 잘못된 해설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날의 상황은 슬로비디오를 본 축구팬들 가운데도 오프사이드다, 아니다 하고 판단이 갈릴 정도로 애매했었다. 경기가 끝난 뒤 오프사이드 시비에 대해 박지성 선수는 “심판도 경기의 일부”라고 말함으로써 이런 시비가 부질없음을 내비쳤다. 따라서 슬로비디오를 보면서 무조건 오프사이드라고 우기는 해설은 국민감정에 부합하긴 하지만, 공정성과 책임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는 어렵다. 반대로 신 씨가 슬로비디오를 근거로 서둘러 오프사이드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은 성급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부심이 깃발을 들었음에도 이를 무시한 주심의 심판에 일단 문제 제기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심의 판정을 정정할 수 있는 최종 권한이 주심에게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면 보다 성숙한 해설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 씨의 해설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가, 또는 성숙한 해설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그의 해설이 매국노로 매도당할 만큼 비애국적인가, 다시 말하면 민주사회에서 애국심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일이다.


스티븐슨은 “다른 사상을 가질 권리를 부정하는 것,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생각할 권리를 부정하는 것, 애국심이라는 철권으로 사상의 자유를 내려치는 것은 오래된 추악한 술책”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어떤 미국인이 자신의 나라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가 의미하는 것은 단지 뉴잉글랜드의 언덕들, 태양아래 반짝이는 초원, 넓은 오르막의 평원, 큰 산과 바다만을 사랑한다는 것”이 아니며, “그가 사랑하는 것은 자유가 살아있도록 만들고, 사람들로 하여금 폭넓은 자긍심을 갖도록 만드는 내적인 분위기, 내적인 빛이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무엇이 진정한 애국심인가


마찬가지로 우리가 ‘대~한민국’이라고 외칠 때, 그것은 월드컵에서 들려오는 태극전사들의 승전보만을 사랑한다는 소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태극전사들이 무슨 수로든 16강에 올라가라는 채찍질이 되어서도 안 된다. 그것은 변화의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역동적인 에너지가 월드컵에서 당당하고 깨끗한 승부로 분출되는 것을 보고 싶은 외침이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우리 사회의 역동성과 다양성 자체를 사랑하는 애국심의 표현이어야 한다. 그것은 또한 공포가 아니라 사랑이 바탕이 되는 사회,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채찍이 아니라 관용과 겸손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자는 다짐이어야 한다. 수많은 양심적인 지식인, 자유주의적인 정치인과 관료사회에 공포와 고통을 몰고 온 매카시즘에 맞섰던 스티븐슨은 대통령이 되지는 못했지만, 광기에 굴복하지 않고, 양식을 호소한 정치 지도자로 미국인들의 가슴 속에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 5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스티븐슨 당시의 미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려 있다. 월드컵이 불러 온 애국적 열정이 일시적인 감정적 흥분의 폭발로 끝나지 않고, 일생의 헌신으로 이어지는 진정한 애국심으로 성숙하기를 기대한다.


- 성한표 / 언론인 전 한겨레신문 논설주간


출처 : 내일신문
날짜 : 2006년 7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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